잘 지내니? 나는 잘 지내.
지난번 나연의 편지에서 가져온 말이야. 주문처럼 외던 말. 주문이란 건… 편지를 적다 말고 주문의 속성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다. 주술적 힘을 가진 말. 그리고 발화됨으로써 힘을 발휘하는 말. 어쨌거나, 주문이 힘을 얻으려면 입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힘으로 어딘가에 가 닿든, 무슨 일을 벌이든 그러려면.
네가 종종 혼잣말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너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김소연 시인의 「그래서」*라는 시를 알고 있는지. ‘내가 하는 말을 /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 나 혼자 듣습니다’ 꼭 이 문장들 같은 시간을 보낸 적 있어. 잘 지내요, 바깥에 그런 안부 인사를 전하고 조용히 닫은 문 뒤에서 나의 혼잣말을 듣고,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던 시간이.
한번은 아니었던 것 같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어 번쯤, 어려운 시간이었어. 왜 그랬더라? 내가 누구인지 찾아 헤맸던 사춘기 같은 것? 그 이유를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시간이었구나. 너도 그런 시간을 지나온 적 있어? 어렵고 복잡했지만 이제는 액자 속에 가만히, 조용히, 단정하게 멈춘 채 담겨버린 시간을 보낸 적 있는지. 그런 시간 이후에도 내가 여전히 간직하고 종종 꺼내보는 것은, 주문처럼 외던 말이야.
팬데믹 시기 어느 날 출근길에 나는 테이블에 놓인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고 멈춰 섰어. 조용히 따라 읽은 문장이 내게 주문이 되었던 순간이었어. ‘지나간다…. 이 시간은 분명히 끝이 난다.’** 지나간다… 그 말에 참 막막하다가도 이 시간은 분명히 끝이 난다, 확신에 찬 말에 안심이 되었지. 내 몫으로 주어진 고립 너머를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서 자주 그 문장을 외웠어. 지나간다. 이 시간은 끝이 난다. 분명히. 그 말이 어서 힘을 발휘하기를 기다리면서.
어떤 시간을 지나고 나서 네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낀 적 있어? 창밖을 볼 여유도 없이 분주하게 아침을 지나며 한 주를 보내다가 주말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이미 햇빛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고요한 방을 바라볼 때의 기분이랄까. 그 방의 벽 위로 밤새 꾼 꿈의 장면이 스틸컷처럼 천천히 등장할 때의 생경함. 이제 우리가 가려진 표정을 짐작하지 않아도 되고, 서로를 마주하는 일에도 제법 익숙해졌지만 나는 어쩐지 가끔 낯선 기분이 든다. 그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함께 등장했던 긴 꿈이었을까.
지난해 내가 자주 외던 말은 이런 거야. 기도할 때였는데, ‘저에게 작은 빛 하나를 비춰주세요. 그 빛을 따라서 두려움을 헤치고 걸어가겠습니다.’ 그 기도는 간구하는 말이 아니라 다짐의 말에 가까웠어. 그 다짐으로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돌아보니 아득하기도 해. 해가 바뀐 뒤에는 자꾸 이 시가 생각나.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로 시작되는 허수경 시인의 「울고 있는 가수」.*** 그 시의 ‘애처러움’이란 단어도, ‘그리움의 입구’도, ‘따뜻했음’이란 단어도 자주 중얼거리게 돼.
이렇게 보니 나는 앞날을 내다보는 것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에 더 익숙한 사람인가 봐. 오랜만에 찾아간 옛집에 앉아서 앨범을 한 장씩 넘겨보고 있는 것 같아. 함께 앉은 사람들과 그래, 그랬었지, 그런 말을 하면서. 너는 어떠니. 혹시 너도 나와 비슷하다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는 말이 너에게 위로와 축복이 되기를. 흐르는 시간이 너에게 마냥 엄격하지만은 않기를.
지금 네가 외고 있는 주문은 무엇일까. 네가 주문처럼 외는 말들이 어서 힘을 발휘하기를.
2026년 2월에
*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 최병태, 「지나간다… 이 시간은 분명히 끝이 난다」, 경향신문, 2020.03.26.
https://www.khan.co.kr/article/202003261935005
***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