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한 해를 넘기는 일이 되게 신기하고 소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감흥이 없게 되었어요. 대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일출을 보러 가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이번에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주문처럼 외던 문장이 있어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영화 <올드보이>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익숙하실 거예요. 저 때 영화를 본 건 아니고, 인터넷의 어떤 게시글에서 감명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 저 문장은 제 가치관이 되었어요. 물론 정말로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았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의 내가 저지른 일들은 대부분 내일, 모레, 글피의 내가 수습했으니까요.
중요한 건 대강 수습할 수 있는 일만 해왔다는 거예요.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저는 잠깐 자문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가?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일이 내게 어떤 경험이나 이익이 될 거라는 예측보다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조금 더 멋진 말로 포장하자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라는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겠네요. 이 가늠에서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깔끔하게 거부합니다. 차후에 제게 큰 경험 또는 이익이 될지라도요.
예전에 어머니가 제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너는 욕심도 없냐고. 점잖게 물어보진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화를 내고 있었어요. 정확하게는 저를 혼내고 있었죠. 무슨 일로 화를 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어머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어요.
속으로는 물론 온갖 대답이 튀어나왔어요.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내가 욕심 없는 게 누구 때문인데, 하는 원망이 대부분이었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어른의 사정으로 많은 것이 좌절되었을 때, 저는 깔끔하게 포기했어요. 제 욕망이 거세된 게 어머니 탓이라고 생각했죠. 엄밀히 따지면 그때는 그게 사실이었어요. 어렸을 때 이루어졌던 제 성향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그건 반만 맞는 대답이었어요. 나머지 반은 회피하려는 마음이 차지하고 있었죠.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려는 마음이요. 물론 제가 모든 일을 회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해요. 문제는 처음부터 온 힘을 다해 거부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지요.
공통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작년 초 시 합평 제안을 받았어요. 저는 바로 머리를 굴렸죠. 일 년 동안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아니, 난 못해. 나는 이걸 제대로 하지 못할 거야. 그런 생각이 막 들었어요. 쉬고 있을 때라 시간이 남아돌았는데도요. 그럼에도 저는 제 책임감이 일 년을 채우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거절했어요.
그 시간, 집안에 틀어박혔던 시간이 후회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남기도 했어요.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자신감을 가졌더라면 즐거운 경험이 하나 더 생겼을지도 모르니까요.
올해에는 성향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제 가치관은 살짝 바뀌었어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에 다른 문장을 조금 추가했어요. “단, 하고 싶은 일은 하자”.
제 욕심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에요. 저는 주제를 알아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요. 이전까지 거절한 일들은 대부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저는 결국 제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만 놀고 있었던 거예요. 가치관이 바뀌었는데도요. 지레 겁을 먹은 거죠.
사서 걱정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즐기는 마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려고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약간의 노력과 약간의 책임감만 필요하다면 최대한 해보는 방향으로 살아보려고 해요.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시작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제 편지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망설이는 일이 있다면 제 용기를 나눠 드릴게요. 수명이 짧아 오래는 못 갈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 자신의 불꽃이 만들어지기 전, 좋은 땔감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