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공통점 멤버들의 렛잇레터를 신청해주신 여러분. 어떤 글을 시작할 때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건 회사에서 이메일을 쓸 때뿐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회사 밖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러분들에게 안녕을 물으니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히 돈도 많이 버시고요.
다들 새해 목표 세우셨나요? 전 올해 새해 목표는 세우지 않고 훅 지나갔었거든요. 딱히 열망하거나 이루고 싶은 게 없어서요. 여전히 몇 가지의 소원은 있지만 그걸 몇 년째 이루려고 애쓰다 보니 올해만의 목표라고 하기에도 그래서 어영부영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번뜩 머릿속에 어떤 말이 떠올랐어요. 저는 그 말을 새해 목표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멋진 말을 하고 싶은 욕망에서 멀어지기’. 어떤가요? 이 말은 제가 시 수업에서 이수명 시인님께 들은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뒤 저는 이 말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위아래로 열심히 곱씹고 굴려보았어요. 단물이 쏙 빠질 때까지. 그리고 제가 아직도 볼품없고 별 볼 일 없는 나를 멋진 말로 포장하려 애써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시에 처음 매료됐던 이유도,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 나를 뭔가 그럴듯해 보이게 만들어줘서였던 것 같아요. 시를 쓰면 제 인생이 이해할 수 없지만 신비롭고 영롱한 어떤 조형물 같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와 제 인생을 그렇게 한참이나 들여다봐 주고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 않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올해는 저를 그렇게 허울뿐인 말로 포장하는 것을 내려놓는 노력을 해보려고 해요. 없으면 없는 대로, 별로면 별로인 대로 바라보고 관찰하고 묘사해보려고요. 이 행위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할까요? 오랜 시간 저는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믿지 못했어요. 인정과 믿음이 있어야 사랑이 뒤따라 온다는 걸 모른 채로 완벽하고 완전한 사랑이 하늘에 뚝 떨어지는 줄로 여겼던 저는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그런 사랑이 떨어지기를. 제가 저를 사랑하게 된다면 타인도, 타인들로 이루어진 이 세상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아무쪼록 저는 사랑으로 살 수 있기를 오랜 시간 바랐어요.
2년 전에 신점을 보러 가서 들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넌 얘가 못됐어. 누가 너를 좋아해도 너는 안 믿어. 사람 좀 믿자, 가영아. 의심, 고집, 자존심 다 내려놓자, 응?” 그 무당 선생님이 모시는 조상신이 해주는 말씀이었는지 아니면 제 얼굴과 인상에 드러나는 대로 말해주던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정곡을 찔려서 눈을 열심히 피했습니다.
무당 선생님은 저를 꼭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싶으셨는지 만신이 나오는 오라클 카드로 제가 만날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결혼생활은 어떤지도 봐주셨어요. “봐, 네 남편은 너밖에 몰라. 거지지만 거지가 아니야. 바람도 안 피우고, 성실하고, 둘 사이에 자식운도 좋다.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신 자식이야. 모든 애들이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는 건 아니거든? 귀해.”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가영아, 결혼할 남자 생기면 꼭 같이 오거라.” 하고 저를 보냈어요. 미래를 기대하고 어쩐지 확신할 수 있게 만드는 무당 선생님의 마지막 발언과 따스한 미소를 마음에 품고, 저는 정말 사람을 믿어봐야겠다고, 사랑을 한번 해보자고, 산뜻하지만 결연한 마음가짐이 되어 연애도 시작했었어요.
그렇지만 그 연애도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났습니다. 제가 저를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 곰팡이처럼 번졌거든요. 곰팡이가 낀 시야로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대로 바라볼 수 없으면 사랑도 이룰 수 없고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제 안의 얼룩을 열심히 닦고 있어요. 얼룩을 닦아내고, 맑고 담백한 시야를 갖겠습니다. 곰팡이 위에 멋진 말을 얹고 또 얹는 식으로 살지 않겠어요. 이것이 저의 새해 포부이고 목표인데요. 여러분께 이렇게 선언하면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저는 하늘을 보면서 마음을 환기하는 일을 자주 하는데요. 오늘 하늘은 아주 옅은 파랑이 고르게 퍼져있어요. 눈에 띄는 구름은 없고, 아주 청명하지도 아주 흐리지도 않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하늘을 문득 올려다보게 되는 여러분을 상상하면서 이만 글을 마칠게요. 여러분 또한 새해에는 바람과 볕이 잘 드는 마음을 더 자주 갖기를 바랍니다. |